책소개
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이다.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랐다.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도 책머리에 육필로 적었다. 육필시집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.
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했다. 시를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.
시집은 시인의 육필 이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다.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다.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이 있기에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었다.
이 세상에서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 고 김춘수, 김영태, 정공채, 박명용, 이성부 시인의 유필을 만날 수 있다. 살아생전 시인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.
200자평
시는 의지가 아니라 힘겨운 생활이 불러들인 미학이라는 이재무 시인의 육필시집.
표제시 <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>를 비롯한 50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
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다.
지은이
이재무
1958/ 충남 부여 출생
한남대 국문학과 졸업, 동국대 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.
1983/ ≪삶의문학≫, ≪문학과사회≫ 등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
2002/ 제2회 난고문학상 수상
2005/ 제15회 편운문학상 우수상 수상
2006/ 제1회 윤동주 시상 수상
2012/ 제27회 소월시 문학상 대상 수상
시집 ≪섣달그믐≫ ≪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≫ ≪벌초≫ ≪몸에 피는 꽃≫ ≪시간의 그물≫ ≪위대한 식사≫ ≪푸른 고집≫ ≪저녁 6시≫, 시선집 ≪오래된 농담≫, 시평집 ≪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≫ ≪긍정적인 밥≫, 산문집 ≪생의 변방에서≫, 공저 ≪민족시인 신경림 시인을 찾아서≫, 편저 ≪대표시, 대표평론Ⅰ·Ⅱ≫ 등 발표.
차례
자서
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
가을
워낭 소리
클릭
밥알
아카시아
장다리꽃과 나비
아무도 호수의 깊이를 모른다
한강 철새
겨울나무
뻐꾸기
무청
멍석
청솔 연기
매실나무
부엉이
오동나무
한가위
소낙비
기러기
제삿살
벌초
별
동백꽃
걸레질
딸기 2
새벽 두시
그리움
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
성냥불
폭설
팽이
연장
철근
장작을 패며
땡감
보리
간경화 꽃
빈집 4.대추나무
산딸기
비 오는 밤에
고구마
머위
부나비들은 저렇게 사랑을 하는구나
딸기
팽나무
우렁이
그리움
어머니의 기도
가는 비
이재무는
책속으로
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
일요일 밤 교복을 다린다
아들이 살아 낼 일주일분의 주름
만들며 새삼 생각한다
다림질이 내 가난한 사랑이라는 것을
어제의 주름이 죽고 새로운 주름이 태어난다
아하, 주름 속에 생활의 부활이 들어 있구나
아들은 내가 다려 준 주름 지우며
불량하게 살아가리라
주름은 지워지기 위해 태어나는 것
주름을 만들며 나를 지운다
자서(自序)
습관이란 편리한 측면과 함께 집요한 구석이 있다. 오랫동안 자판을 두들겨 글을 써 온 버릇 탓으로 실로 오랫만에, 육필시집을 내기 위해 손 글씨를 써 보니 여간 힘이 부치는 게 아니었다. 워낙에 악필인데다가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에 쫓겨 쓰다 보니 더욱 글씨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.
독자 제위에게 송구할 따름이다.
더욱이 이 시집이 내 여생뿐만 아니라 혹 사후에라도 남게 된다면 그 부끄러움을 어찌 감당해야 하나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까지 한다.
비교적 행수가 적은 시편을 위주로 수록하게 되었다. 그것은 내 노동력을 줄여 보자는 얄팍한 속셈도 없지 않았지만 악필에 독자들의 눈에 피로가 가중될 것을 염려한 배려도 있었다는 것을 밝힌다.
나는 지금까지 9권의 시집과 1권의 연애시집 그리고 두 권의 시선집을 발간하였다.
이번 육필시집을 내기 위해 그간의 시집 속 시편들을 일별해 보니 미세하지만 시나브로 시의 서정이 진화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.
이때의 진화란 발전적 개념이 아닌 방법적 변화를 의미한다.
80년대의 농촌적 정서에서 도시적 정서로, 또 최근의 생태적 감수성으로의 변화가 시의 스타일의 변화를 이끈 셈이다.
앞으로의 내 시의 진로를 나는 알지 못한다.
오늘의 나의 정체성은 그간 내 생을 다녀간 무수한 사물과 인간들과의 인연이 만든 것이다.
그렇다는 것은 앞으로의 내 정체성 또한 내 인생을 다녀갈 무수한 사물과 인간들과의 인연 여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것이다.
부디, 악연 대신 선연들이 보다 더 많이 내 생을 다녀가길 바란다.
앞으로의 내 시 또한 이러한 인연들에 의해 새롭게 구성될 것을 믿는다.